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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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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을 처음 방문한 어른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음침한 분위기와 여기저기 전투 혹은 격투 장면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사운드, 심지어 조명까지 모두 거부감이 앞선다.

 

공통점은 대부분 어린 시절의 스스로를 잊고 내 아들이 이런 곳에서...가 앞선다. 언젠가 필자가 강조했듯이 과연 부모들의 생각처럼 음란하고 퇴폐적인 일이 PC방에서 가능할까? 청소년들의 음란 사이트 접속 대부분이 어쩌면 가정이지는 않을까? PC방에서 많은 어른들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부모들의 염려 같은 일들이 일어날까?

 

그렇다고 PC방이 권장하고 싶을 정도의 좋은 환경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누군가 소수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다. 물론 PC방의 요구는 콘텐츠인 게임이 더욱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전체이용가 등의 게임을 특정 시간에 못하게 되면 아이들은 PC방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사법부 여기저기로 호출되는 필자는 대한민국 법이 가장 선호하는 사람인 것 같다. 가끔은 서울까지 올라가 1박을 해야 하는데 아이 때문에 난처하기 짝이 없다. 처음에는 재판중인 법원에 아이를 데려가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아빠가 판사와 싸우는 것이 가장 자랑스럽다고 하니 법원에서 곤란한 일을 겪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일박을 하면서 지인을 만날 때 아이를 술집으로 데려 가여 할까? 아니면 룸싸롱? 나이트클럽? 다방? 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다. 어찌된 나라가 아이를 데리고 갈 곳이 한 곳도 없단 말인가? 이 나라는 아이를 키우면 안 되는 나라인가?

 

누가 뭐래도 필자에게 가장 안성맞춤은 PC방이다. 필자는 소송 관련 서류를 마무리하고, 아이는 옆에서 잠시나마 고단한 아빠 곁을 떠나 게임 세계에 빠져든다. 잠시 지인을 만나는 것도 좋다. PC방만큼 안전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아이와 다른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이 너무 틀려 필자만 다른 세상에 사는 것일까?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

 

필자는 죄인도 아니고, 이 나라의 행정청이다. 그런 필자가 음침한 PC방에 아이를 데려가는 것일까? 하지만 고민이다. 이제 밤늦게 아이 혼자 PC방에서 게임을 즐기지 못하면 무엇을 할까? 누군가의 논리 있는 주장에 밀려 강제된 법 때문에 너무도 절박한 누군가는 갈 곳을 잃어가고 있다. 필자는 항상 아이를 PC방에 데려가지만 아이가 잘못된 길을 간다고 생각해 본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더군다나 게임을 즐기고 있으면 그 보다 안심되는 것도 없다.

 

아이가 무엇엔가 빠져 드는 것을 사람들은 집중력이라고 한다. 집중력은 교육에 좋다고 한다. 그런데 게임은 집중하면 안 된다. 과연 게임 때문에 중독자들이 발생하는 것이 사실일까? PC방 때문에 본드나 가스 흡입 등 청소년 범죄가 많이 줄었다면 그들이 게임 중독자가 된 것은 아닐까?

 

사람이 무엇을 절제하는 것은 스스로의 조절 능력으로 곧 교육이 필요하다. 이런 교육이 필요한 시점에 강제로써 해결하려는 것 자체가 모순은 아닐지? 밤늦게 아이들을 관리하는 것은 부모들의 책임이다. 그런 부모가 사회에 책임을 넘겨 꼭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요구마저 문을 받게 하는 것은 아닐까?

 

제도를 만들어 누군가 소수의 피해가 예상된다면 다른 제도를 검토해야 한다. 그래도 대안이 없으면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가장 최선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아이디어가 고갈됐기 때문에 주어진 권리로 억지하기 마련이다. 세상 사람들의 아이디어나 생각은 주어진 권리를 가진 자들 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지 않을까? 이를 안다면 제도를 만들 권리를 가진 자들이 한 번 더 생각하고 그래도 아니라 싶으면 또 한 번 어쩌면 평생 고민하며 살아야할 운명일지 모르다.

 

독재시대 끝난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만들 놓고 따라 오라 식은 옳지 못하다. 홍보 등 다른 방식의 접근을 통한 제도를 만들거나 제한적인 제도를 통한 시범을 충분히 거쳐 정착 시킨 후 소수에 대한 대안을 만들거나 다른 제도를 통한 규제를 하는 등 충분한 검토와 사회적 공감이 있고난 후 시행하는 풍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동배 서울디지털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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